"내 장애는 축복이었다" 고 강영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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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7-02 10:36 조회1,932회 댓글0건본문
"내 장애는 축복이었다"
14세에 실명, 장애를 딛고 한국인 최초 맹인박사 강영우
경력
2001 ~ 2011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미국 백악관 종교, 사회봉사부문 자문위원,유엔 세계장애인위원회 부의장
1979 미국 노스이스턴일리노이대학교 특수교육학 교수
수상내역2008 국제로터리 인권상
2006 미국 루스벨트 재단 선정 127인의 공로자
고(故) 강영우 박사는 1944년 경기도 양평 서종면 문호리에서 태어났다. 운동장에서 뛰어놀기를 좋아하던 열 네살 중학생은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축구공에 맞는 사고로 그만 시력을 잃고 말았다. 반복되는 수술이 있었지만 시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장남의 실명 소식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투병하다가 세상을 뜨고 연이어 누나까지 목숨을 잃어 어린 동생들과 흩어져 지내야 하는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맹학교와 철물점, 고아원으로 흩어진 3남매는 고립무원의 상황에 좌절하고 비탄에 빠질 새도 없이 생존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을 정도로 살아남는 게 절박한 과제였다. 당시 맹인학교에 들어간 시각장애인들의 미래는 점쟁이나 안마사의 길이 전부였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과 인식을 깨고 한국의 이와하시 다케오(일본의 시각장애인 재활의 선구자) 가 되겠다는 각오로 점자를 배우며 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 당시 자원봉사자로 왔던 여대생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후에 아내가 되는 석은옥 여사 였다.
강영우 박사는 시각장애인이란 이유로 대학 원서접수를 거부 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결국 연세대에 입학하여 낮은 체육점수에도 불구하고 차석으로 졸업하였다. 진리 탐구와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마저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어야 하는 현실과 맞서야만 했다.
신체장애를 유학의 결격 사유로 정해 놓은 불평등한 법조항을 타파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고 그후 석은옥 여사와 결혼 해 한국 장애인 최초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한민국 최초의 맹인 박사가 된 것이다.
강영우 박사는 독실한 기독교인 이었다. 미국에서도 강연을 위해 교회를 찾아 다녔고 신앙생활을 하며 많은 인연을 맺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까지 인연이 닿았다. 강영우 박사는 자신의 책을 선물했고 책을 읽고 감동받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강영우 박사를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로 지명했고 상원들이 승인했다. 이는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의 인준을 받는 고위 공직자 500명 중 한명이며, 부시대통령이 정권을 연임하며 강 박사는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로 8년을 일하며 장애인 복지를 위해 헌신했다.
자유, 인간애, 인권, 민주주의를 가슴에 품고 역사 속에서 세상을 움직인 인물로 뽑힌 강 박사는 루스벨트 재단 선정 127인의 공로자에 선정되었고, 루스벨트 국제 장애인상의 수혜로 받은 5만 달러를 기부하여 올해의 장애 극복상을 제정하여 장애인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강 박사는 이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였고, 투병 중에도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 축복이라며 국제 로터리 재단 친선대사 장학생으로 수학한 피츠버그 대학 시절을 떠올리며 재산을 정리하였다.
자신이 입은 은혜를 사회에 환원하려는 뜻을 비치자 두 아들은 각기 25,000달러를 내어 기부한도인 25만 달러를 기부하여 장학금 수혜자가 장애를 극복하고 도전의 힘을 얻길 바라는 마음에 함께 했다.
실명은 자신의 삶을 바꾸어 비전을 품게 했고, 믿음으로 하나 된 가족은 구성원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심지를 붙잡고 성실한 삶을 살게 한 축복의 시간들로 단 열매를 거두게 한 과정이었다고 고백한 강영우 박사는 2012년 2월 23일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고(故) 강영우 박사의 강연>
강영우 박사를 알게 된 건 MBC 해피타임 명작극장 '눈 먼 새의 노래'를 시청하면서 부터다.
모두가 굶주렸던 시대에 상상하기 힘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엄청난 성공을 이뤄낸 고(故) 강영우 박사의 이야기는 푸념과 불평을 일삼던 내 삶에 살아가야할 당위성을 일깨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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